기업은 평등하지 않다
당연하다.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다면 직급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직급 체계를 간소화했다고 직급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CEO - C레벨(COO, CTO, CFO, CPO 등) - 팀 리드 - 팀원 이렇게 4단계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팀원끼리는 평등해도 팀원과 팀 리드, 팀원과 C레벨은? 당연히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음과 토론
평등하지 않다면? 당연히 토론이 잘 안 된다. CEO가 어떤 의견을 발표하는데 어떻게 팀원이 "전, 당신 의견과 다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유럽이나 미국은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각오하지 않은 이상. 직급이 높을수록 위계상 단계가 멀어질수록 직급이 높은 사람의 주장대로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완벽한 주장과 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다. 의견을 물어봐도 말하지 않을 것이고, 말하지 않음 의견 없음은 동의로 간주되고, 결국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이 되버린다.
토론이 없는 기업과 실패
토론이 없을 때 문제는 직급이 높아질수록 내부 정보에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밑에서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 의견을 들을 수 없게 된다. CEO나 C레벨의 과거 경험, 지식에 의존한 채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바라봤을 때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과거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던 영화감독이 몇 년 쉬었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쫄딱 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 기사에 현장 분위기를 전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젊은 스태프들이 봤을 때는 정말 재미없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만 혼자 껄껄 웃으면서 이 장면 최고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장면이 재미없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장면이 쌓여가면서 재미없는 영화가 나온 것이다.
유명 투자자 레이 달리오의 경우 신입사원과 맞짱토론을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출처: 신입사원이 창업자와 맞짱토론, 조직에 성공DNA 심다, 중앙일보)
토론의 규칙을 바꿔보기
한국의 경우에는 토론의 규칙을 바꿔보면 좋을 거 같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다.
"제 주장에 틀린 점이 있습니다. 제가 일부러 틀리게 말할 것입니다. 이 틀린 점을 찾아내서 원래 제 의견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부하 직원들 입장에서는 사실 엄청 힘들긴 하다. 그래도 토론 분위기가 완전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수많은 의견을 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탐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과정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와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뭐가 틀린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것도 누군가는 틀렸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왜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말할 수밖에 없다. 원래 자신이 생각한 정답과 다른 수많은 답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 중 가장 좋은 의견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게 제가 원래 생각했던 정답입니다!"라고.
규칙을 바꿨을 때 장점
1.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답을 찾는데 익숙하다. 답을 찾아내라고 하면 정말 열심히 찾을 것이다. 모두가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 되어서 말이다.
2. 윗사람이 상처를 덜 받는다.
A라고 주장했는데, A주장이 별로다 틀렸다 이런 얘기를 즐겁게 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은 숨긴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주장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주장을 선택하는 것은 좀 더 쉽다. 상처도 덜 받고. 설사 원래 하려던 주장이 정말 바보 같은 주장이었구나 깨달아도,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얼마나 좋은가.